韓 기업 첫 기술연구소 설립
전경련 회장 맡아 재계 대변
미국·일본과도 활발히 교류

[현대경제신문 성현 기자]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사진)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당초 대학교수를 꿈꿨으나 1966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부친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귀국,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기업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섬사업 기반을 다졌고,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조 명예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혁신과 주력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 명예회장은 생전 “글로벌 기업으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며 품질 확보를 강조했다.

특히 기술을 중시해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6년에는 이를 효성기술원으로 개편했다. 효성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이 탄생하는 원동력이 됐다.

효성은 1997년 자력으로 스판덱스 상업화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섬유를 세계 세 번째,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하며 효성은 전 세계 50여개 제조·판매 법인과 30여개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도맡았다.

2007∼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재계를 대변해 규제 개혁 등을 정부에 건의하고 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에도 앞장섰다.

또 한미재계회의 한국 위원장(2000∼2009년), 한일경제협회장(2005∼2014년) 등도 역임했다.

2000년부터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 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본과의 우호 협력과 관계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8회 한일포럼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일본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대수장을 받기도 했다.

금탑산업훈장(1987년)과 서울국제포럼 선정 영산외교인상(2022년) 등도 받았다.

고인은 소탈한 경영인으로도 손 꼽혀왔다. 겉치레로 격식 차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고 회장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정에 홀로 움직였다.

중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마중 나온 임원들이 가방을 대신 들어주려고 하자 “내 가방은 내가 들 수 있고 당신들이 할 일은 이 가방에 전략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라고 한 일화도 유명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

장례는 효성그룹장으로 내달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장례위원장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내달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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