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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현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 <2회> 1장 유서(2)

기사승인 2023.03.29  08: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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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숲 작가

   
▲ <삽화=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장 유서(2)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위에 가지런히 개켜둔 이불이 약간 뒤틀린 것이 보였다. 이불을 다시 펴서 똑바로 개켜놓고 베개의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여야만 뭐든 집중하게 되는 습관은 여전했다. 가방을 열어 죽음을 실행할 만한 물건을 찾아보았다. 수면유도제가 꽤 담긴 약병, 넥타이, 커터 칼. 커터 칼을 꺼냈다. 은색 칼날을 밀어냈다. 뾰족한 끝부분이 유난히 날카로웠다. 칼날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슬그머니 칼날을 밀어 넣고 약통을 집어 들었다. 하얀색 수면유도제는 볼 때마다 묘한 유혹을 느끼게 했다. 깊은 잠에 빠진 상태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실패 이후를 감당하는 건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넥타이 끝을 말아 올가미 형태를 만들었다. 벽에 쇠 붙박이가 있지만 벽에 몸이 걸리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고, 성공한다 해도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창밖으로 몸을 날리는 건 나무와 풀이 우거져 역시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건물 옥상이나 다리에서의 투신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외부에서의 자살은 피하고 싶었다. 요란한 죽음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시 소주 한 모금을 길게 들이켰다. 온몸에 취기가 돌았다. 긴장은 어느 정도 풀렸지만 우울은 한껏 더했다.

욕조에 물을 받았다. 커터 칼을 든 채 욕실 거울 앞에 섰다. 머리를 매만지고 수염을 확인했다. 수염이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눈동자는 움푹 꺼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깊게 팬 양쪽 쇄골 아래로 갈비뼈가 앙상하게 도드라졌다. 죽은 자의 몰골이었다. 욕조에 켜놓은 물소리가 시끄러웠다. 팬티를 벗고 물을 끈 뒤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한바탕 욕조 바깥으로 넘쳐흘렀다. 욕조 길이가 모자라 다리를 반으로 구부리고 누웠다.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숨이 느리게 이어졌다.

당신이 저지른 악행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자금 상황이 어려운 업체들만을 골라 일을 맡기는 건 당신의 오래된 수법이었다. 당신이 집어삼킨 소기업들은 꾸준히 늘어났다. 피해자인 그들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었고, 생을 포기하거나 사기죄로 교도소에 수감 되거나 길바닥으로 내몰리면서도 그들은 당신에게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다. 당신은 철저했고 교묘했고 대담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자 분노 게이지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당신의 영혼은 ‘악’으로 가득 찼다. 당신을 볼 때마다 ‘악의 평범성’을 말한 독일 철학자의 논리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이 시키는 것만을 충직하게 이행하는 아이히만처럼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이히만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상부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던 것이고(물론 그의 논리이지만), 나는 악인의 피를 물려 받은 유전자로서 충실했다는 것!

주먹으로 물을 내리쳤다. 첨벙, 첨벙, 첨벙…… 출렁이는 물의 파동이 허망한 자맥질을 비웃었다. 물속으로 몸을 가라앉혔다. 한순간 물결이 출렁대다 다시 잠잠해졌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속에 잠기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숨을 참지 못하고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욕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코와 입으로 거친 호흡을 내뿜었다. 한참 뒤 호흡이 가라앉고 물결의 파동도 가라앉았다. 천장에 맺힌 수증기가 물 위로 떨어졌다. 고요한 침묵이 한 방울씩 깨지며 공명음을 냈다. 커터 칼을 집어 들고 천천히 날을 밀어냈다. 왼쪽 팔목 안쪽에 갖다 대자 차가운 감촉이 서늘하게 전해졌다. 그 순간 손 대표가 당신에게 물었던 것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서, 그 기타는 어떻게 됐다는 거야?”

 

*

열어둔 욕실문 바깥에서 기타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소리는 점점 가까이, 점점 크게 들렸다. 갑자기? 나는 벌떡 일어나 욕조에 걸터앉아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훨씬 더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기타 소리가 분명했다. 기타에 얽힌 그 시절 얘기와 마지막 노래를 떠올리는 동안 기타 소리가 들리는 기막힌 우연이라니. 착란상태의 지경까지 온 건가, 웃음이 튀어나왔다. 며칠 전 당신과 손 대표는 아리송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급한 결재 때문에 회장실을 찾았던 나는 우연히 당신과 손 대표의 대화를 듣고 말았다. 놀랍게도 당신들은 기타에 얽힌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것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문제의 기타 ‘루시퍼’에 대한 얘기를.

당신이 손 대표에게 기타 루시퍼 얘기를 꺼낸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겐 충격이었다. 아무리 절친한 관계라도 해서는 안 되는 얘기가 있는 법이다. 내게는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문제의 기타가 그 순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려운 나의 과거사에 당신이 개입했던 일들을 흔한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당신의 가벼움에 치가 떨렸다.

“설마, 아무리 애들이라도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그렇게 모를 리가 있겠어?”

“하여간 다들 믿더라니까. 애들이 어려서 순진했던 거지.”

“그래서, 그 기타는 어떻게 했다고?”

당신과 손 대표가 다음 말을 몇 마디 더 이어가는 동안 나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마치 딛고 선 바닥이 뻥 뚫려 밑으로 추락하거나 공중으로 치솟아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옆에 있는 장식장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 대표는 내가 들어온 것을 알고 당황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당신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나를 보자마자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고질적 습관으로 내 머릿속 의문을 파괴했다. 겨우 중심을 잡은 나는 당신이 앉아 있는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좀 전에 하신 말씀은, 무, 무슨 뜻이죠?”

목소리는 기어들어 갈 듯 작고 떨렸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어? 말할 땐 똑바로 당당하게 하라고 했지! 아직도 쥐새끼 같이 눈치 보는 버릇을 못 버렸냐!”

당신은 탁자를 탕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손 대표는 가봐야 한다며 슬그머니 일어섰다. 당신은 내게 쓸데없이 벌여놓은 일 처리는 해결했냐고 물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손에서 결재 서류철을 잡아챘다. 서류를 훑어보던 당신은 싸늘한 표정이 되었고,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회장실 안에 불어 닥칠 태풍의 전조증상을 예고하는 표정이었다. 눈에 띄는 물건들이 모두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서류철을 내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여러 차례 가격했다. 한 번도 빠트리지 않던 비난이 당신의 입에서 쏟아졌다.

“사람을 죽인 놈도 자식이라고 유학까지 보내고 살려놨더니, 겨우 한다는 짓거리가!”

거칠게 대항하고 싶다가도 당신의 그 한 마디에 나는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안으로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문밖에 대기 중이던 최 실장이 뛰어 들어와 당신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당신이 지시한 내용을 무시한 채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 결과였다. 나는 속되고 속된 당신의 모든 언행을 견뎠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 위선들을 견뎠다. 손해를 끼치는 인간은 모두 적이라는 비합리적 논리를 견뎠다. 최 실장이 당신의 손에서 골프채를 빼앗았고 나는 갈기갈기 찢긴 쥐새끼처럼 바닥에 엎드려 꼼짝하지 않았다. 당신이 내뱉던 농담의 진의를 떠올리며 참았다. 당신의 폭력은 끝까지 적응되지 않았고 당신이 꺼낸 기타 루시퍼 얘기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누구도 알아선 안 될 내 인생의 엄청난 비밀을 농담처럼 가볍게 발설하던 당신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욕조의 물이 완전히 식어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 순간 기타 줄 긁는 소리가 다시 귀를 파고들었다. 환청도 착란도 아닌 현실 속 소리가 분명했다. 참으로 희한하고 신기했다. 그러나 거칠게 긁어대는 소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신경을 긁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기타를 저따위로 치다니!”

기타 줄을 튕긴다기보다 긁거나 뜯는 소리에 가까웠는데, 마치 현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것 같았다. 제멋대로 귀를 강타한 소리는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고 계속 듣고 있자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기타 줄 긁는 소리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나는 물을 박차고 욕조 밖으로 나왔다. 물이 출렁이며 욕실 바닥으로 넘쳐흘렀다. 타올로 대충 물기를 닦았다. 그 와중에도 기타 줄 긁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귀를 괴롭혔다. 문득 팽팽하게 감긴 기타 현 하나가 머릿속에서 탕, 끊어졌다.

“그 기타가 나를 도와준 셈인 거지.”

고교시절 겪었던 사건 이후, 기타 루시퍼에 대한 생각은 의식적으로 닫고 살았다. 손 대표가 당신에게 기타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 순간엔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 입속에서 맴도는 노래 하나가 반복적으로 마음을 휘저어 놓듯 의문 하나가 줄곧 의식 속을 맴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엉망진창 기타 소리가 의문을 부추긴 셈이었다.

“기타를 훔치다 사람을 죽였다는데 지가 음악을 포기 안 하고 배기겠어?”

“그럼 자네 아들은 아직도 기타 주인이 죽었다고 믿고 있단 말이지?”

“당연하지!”

손 대표의 질문의 의도가 몹시 불쾌하고 불편했다. 기타 주인이 죽었다고 믿지 못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내 인생은 기타를 훔치던 그 순간 형체도 없이 부서졌다. 내가 던진 커다란 화분에 기타 주인의 머리가 박살 난 순간 나의 시간도 함께 박살 난 것이다. 기타 주인이 죽어버린 시간을 기점으로 나는 평생 어두운 삶을 쉼 없이 지나고 있었다. 당신의 그늘은 비교적 안전했지만 빛이 없는 그늘은 빠져나갈 수 없는 암흑의 세계일 뿐이었다.

 

*

기타 소리는 이제 코드 하나만을 연습하는지 비슷한 패턴의 형태로 반복되었다. 그나마 마구 줄을 뜯거나 긁을 때보단 참아줄 만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같은 코드를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넘게 반복했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기타를 저렇게 함부로 다루다니, 저건 학대나 마찬가지다. 아주 몰상식한 인간 아니면 어린아이 짓이 분명하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좀 합시다!”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작은 소리였고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한심하기는. 마치 당신이 지켜보고 있기라도 하듯 무의식은 소심함을 잊지 않았다. 소심함을 떨치지 못한 것에 울컥해 한 번 더 소리쳤다. 죽는 마당에 두려울 게 뭐 있지, 이번에는 내가 듣기에도 깜짝 놀랄 만큼 크고 거친 소리였다.

“그만 해! 기타줄 뜯지 말란 말야. 그만! 그만 하라고!”

기타 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나는 탄산음료라도 마신 듯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약간은 의기양양해져서 내친김에 몇 마디 더 소리치고 싶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내 목소리를 정확하고 자신 있게 내본 적이 있을까. 거의 없었지 아마? 그런 생각이 들자 히죽히죽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지금껏 의기소침과 소심형의 전용 캐릭터로 살아온 건지, 한심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조롱하듯 기타 줄 뜯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의도적인 듯 무질서하게 마구 현을 긁어댔다. 기타를 전혀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기타를 만지면 여섯 개의 현이 고유의 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체, 기타 줄을 어떻게 다루면 저토록 괴상망측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 방안을 이리저리 돌던 나는 다시 창문으로 목을 빼고 소리를 질렀다. 한 번 터진 분노는 예의나 격식 소심함 따위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어떤 새끼야! 기타 그만 치라는 소리 안 들려? 그만 좀 하라고!”

상대는 내 고함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끼기긱끽끽긱,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바짝 깎은 손톱을 억지로 물어뜯었고 방안을 왔다 갔다 귀를 틀어막고 소음을 버텼다. 아니 소음을 버텼다기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체득된 몸의 익숙한 반응이었다. 상대는 또다시 같은 코드를 반복적으로 쳐댔다. 반복되는 코드 소리는 끈질기게 이어졌고, 그나마 일정했던 리듬도 마구 흐트러져 그야말로 엉망진창 불협화음이 주변을 불규칙하게 떠돌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귀를 파고든 기타 소리는 나를 엉뚱한 소용돌이 안으로 몰아갔다. 아까와는 달리 반복되는 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였고 코드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당장 쫓아가 기타 소리를 똑바로 잡아 주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엉망진창 기타 소리는 복잡했던 머릿속을 단박에 정리해버릴 정도로 나를 사로잡았다.

“에잇! 죽기 전에 저놈의 기타 소리부터 끝장을 내야지!”

재빨리 옷을 껴입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복도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복도에 깔린 붉은 카펫은 낡고 더러웠다. 어두운 조명이 복도를 더욱 칙칙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복도 끝에 위치한 방이 가장 조용한 방이라고 했던가. 혼자가 아니라면 절대 오기 힘든 곳,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음침했다. <계속>

 

차종혁 기자 justcha@finomy.com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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