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

 
 

#54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     

천하의 신망을 얻은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마침내 대사구의 벼슬에 이르렀다. 당시 노나라는 3환이라 불리는 세 정파가 권력을 쥐고 나랏일을 흔들던 때다. 왕인 정공(定公)은 삼환에 휘둘려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주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공자는 천하의 법도가 무너진 것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뜻밖에도 국정을 총 지휘하는 권한을 쥐게 된 것이다. 
공자가 전권을 쥐게 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그 때에도 정치권력의 속성은 지금이나 같았다. 대사구의 자리는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쥐는 자리라, 세 정파가 서로 합의를 통해 사람을 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관례에 따라 맹-손-숙 세 정파의 대부들이 돌아가면서 상국(上國)이 되어 국정을 맡았다. 그러나 이들의 세도가 정점에 이르게 되자 서로에 대한 견제가 워낙 팽팽하여 대립이 심화되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공자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공자를 대사구로 삼고, 또한 상국의 직무까지 대행하게 한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하늘이 주신 기회로 생각했다. 
왕궁보다 높게 쌓은 삼환의 성벽을 각각 허물어뜨려 왕의 권위를 세웠고, 이 과정에서 자기 주인을 배신하고 군주의 자리까지 노리는 양호와 공산불뉴의 반란을 진압했다. 외교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제나라는 공자가 국정을 맡아 노나라가 날로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공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노나라 군주를 협박하여 기세를 꺾으려는 심산이었다. 이때 공자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제나라의 무례를 꾸짖어 제 경공의 사과를 받았다. 더구나 제나라는 사과의 의미로 예전에 빼앗았던 3개의 성읍까지 노나라에 돌려주게 되었으니, 혹을 떼려다 혹 붙이는 망신을 당하고 돌아갔던 것이다.     
마침내 군주의 권위를 세우고 대부들의 세도를 눌러 국가의 기강이 바로잡히는 듯하였으나, 세상일은 누구에게도 일사천리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정상회담에서 실패한 제나라가 80명의 미녀로 구성된 가무단을 노나라에 보내 군주 정공의 혼을 빼앗은 것이다. 
명절이 되어 큰 제사를 지낸 후 정공이 제사고기를 대부들에게 나누어 보내면서 공자에게는 아무런 기별도 하지 않았다. 군주가 제사고기를 나눠주는 것은 신임의 상징이다. 이로써 공자는 정공의 마음이 자신을 떠난 것을 알고 노나라를 떠나게 된다. “여자들의 말이 군자를 떠나게 하고, 여자들의 노래가 나라를 망하게 하네. 
얌전하게 물러나 떠돌기나 하면서 남은 세월 보내야겠네.” 
(彼婦之口 可以出走 彼婦之謁 可以死敗 蓋優哉游哉, 維以卒歲 - 공자세가)   
이렇게 공자 나이 55세에 고달픈 주유천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 공자가 자상호에게 신세한탄을 했더군요. 언제 얘기입니까? 
- 아마도 사후의 이야기 같네. 다 살아보고 난 뒤의 한탄 같은 것이니까. 
- 공자가 자상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노나라에서 두 번 쫓겨났고, 송나라에서는 뽑힌 나무에 맞아 죽을 뻔했고, 위나라에서는 쫓겨났으며, 송나라와 주나라에서 궁지에 몰렸고, 진과 채나라에서는 포위를 당해 숨어있어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계속하여 어려움을 당하자 친한 사람들과의 교분은 점차 멀어지고 제자들도 흩어졌죠. 이게 다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자상호가 임회라는 사람의 예를 들어 대답했지요. 
- ‘사귐’에 대한 이야기였네. 공자는 국가의 법도와 백성에 대한 인의를 위하여 정치를 하였으나, 공자를 등용한 계씨나 군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맞는 만큼 공자를 등용하여 쓰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의리 없이 외면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라는 다시 기울게 되고…. 
- 맞아요. 의리를 저버려서 잘 되는 일이 없다는 건, 교훈으로서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리를 저버리는 게 더 잘되는 길일 때도 있지 않나요? 
- 허허. 사람 일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법이지. 의리를 지키면서 안 되면 그나마 명분이라도 남지 않겠나. 의리마저 저버리고 기울었으니 이익도 명분도 달 잃게 된 것이지. 자상호의 이야기나 더 해보게. 
- 자상호가 대답했습니다. 임회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어떤 나라에 임회라는 사람은 천금의 가치가 있는 옥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 난리가 닥쳐 피난을 가야 했죠. 마침 갓난아이가 있어 아기를 들쳐 업으려니 옥돌을 챙길 수가 없고 옥들을 안고 가려니 아기를 업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만 선택할 수 없음을 알고 임회는 옥돌을 버려둔 채 아기를 업고 도망쳤답니다. 산속으로 숨었을 때 함께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는 급할 때 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숨어 지내기에 짐이 될 뿐인데, 값나가는 옥을 버리고 아기를 업고 오다니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러자 임회가 말했답니다. ‘옥은 이익으로 연결된 것이지만, 아기는 하늘이 맺어준 것입니다. 이익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쉽게 헤어지지만, 하늘이 맺어준 사람들은 어려움과 곤란을 당할수록 더욱 단결하는 것입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인연과 서로 단결하는 인연은 그 차이가 매우 멉니다.’ 
- 옳거니. 지금 사람들은 괴질의 위협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큰 시험을 당하고 있네. 사람들은 위험을 피해 쉽게 헤어지기도 하지만, 이럴수록 더욱 단결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은 진정한 우정과 하늘이 맺어준 인연 때문일 것일세. 
- 본래 군자는 대의를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대의를 따른다는 것은 하늘의 인연을 따른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자상호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네요.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군자는 담백함으로 사귀고, 소인은 달콤한 것으로(단맛이 떨어지면) 끊어진다. 다시 말하면 까닭 없이 맺어진 자 까닭 없이 헤어진다.” 
- 이 사태가 인간의 사이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구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람들 사이를 멀게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 
- 하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라는 걸 하면서 직장 동료들끼리도 얼굴 볼 기회가 줄어든 것 아세요? 
- 알다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가 전보다 많이 멀어졌을까? 
- 자상호의 말이 더 실감나지요. 술이나 향응을 위해 만나던 사이들은 아무래도 기회가 줄어든 만큼 예전보단 소원해졌을 것 같고, 담백하게 진지한 우정으로 이어진 관계들은 거리에 상관없이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그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도 시험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외교관계라는 것도 물론 각자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하는 것이지만, 지금처럼 각자가 어려움에 봉착하고 보면, 의리가 우선인 관계와 이익이 우선인 관계들은 그 속내가 서로 드러나는 것 아니겠어요? 
- 그렇겠지.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하는 말도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야. 개인과 개인 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말일세.   (계속) 
* <莊子> 한 마디 
君子之交淡若水(차군자지교담약수)
小人之交甘若醴(소인지교감약례) 
君子淡以親(군자담이친) 小人甘以絕(소인감이절)
군자의 사귐은 물같이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여 오래 가지만, 소인배의 사귐은 단맛이 다하면 끊어진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