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감자밭 스캔들

 
 

#47 감자밭 스캔들       

- 내가 웃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 웃긴 이야기 좋죠. 안 그래도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요즘입니다. 얼렁 해보세요.  
- 어떤 젊은 사람들이 시장바닥에 서서 대자보를 붙여놓고 이렇게 외쳤다네. “당신의 감자를 하나씩만 기부하세요. 세상에 억울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감자밭을 일구려 합니다. 하나씩만 기부해주시면 이 분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에요.”곁에는 그 시대에 정말 가련한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억울한 일을 신원해주지도 않는 여인들이었지. 국가도 돌보지 않고 귀기울여주지 않는 여인들이었다네. 마음 착한 사람들이 감자를 한 알 두 알 보태주기 시작했지. 어느덧 감자가 모이자 젊은이들은 여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감자를 심었다네. 
- 다행이군요. 감자 농사는 잘 되었나요? 
-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야. 우리 동족 중에 이런 여인들이 있다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떠드느냐며 대자보를 찢는 자들도 있었고, 밭에 와서 돌을 던지고 가는 자들도 있었다더라고. 그러나 하여튼, 그들은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감자를 심었네. 여인들은 이미 늙어가고 있었으므로, 젊은 사람들이 일을 대신 했어. 품삯도 안 받고 농사를 지었지. 
- 다행이군요. 
- 드디어 감자를 수확을 하고, 다시 그것을 쪼개서 절반은 먹고 절반은 다시 심어서 농사를 점점 늘려갔지. 개간하는 밭도 점점 넓어졌고 와서 도와주는 사람들도 늘어났어. 물론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함께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황이 넉넉해졌어. 
- 해피엔딩이군요. 
- 아닐세. 진짜 웃긴 이야기는 이제부터일세. 자칫하면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지도 몰라. 
- 아이쿠. 어떤 일인데요? 
- 감자밭 덕분에 할머니들은 해마다 충분히 거두어 먹고 자립할 정도가 되었는데, 어느 날 말이지. 
- 예. 
- 어느 날 할머니 중 한 분이 갑자기 양심선언을 한 거야. “나는 이웃들이 보시해준 씨감자 중 한 알도 먹어본 적이 없다. 저것들이 나를 팔아서 감자를 모아가지고 어디에 썼는지. 이제와 생각하니 이용만 당한 것 같아. 저것들은 아무 한 일이 없어. 다 벌을 줘야 돼.” 
- 이런! 보시로 얻은 감자를 심어서 수십 년을 그것으로 잘 먹고 살았는데, 씨감자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고발을 했다는 거에요? 
- 뭐, 그건 사실이지. 사람들이 모아준 씨감자 자체를 나누어 먹은 것은 아니니까. 
- 하하. 팩트는 팩트군요. 아, 근데 좀 서글프네요. 여인들을 위해 농사지었던 사람들은 배신감 좀 느끼겠는걸요? 
- 수십 년 뒷바라지한 사람들이 허탈하겠지.   
- 정말 그러네요. 그만 손을 떼고 싶겠어요. 
- 그 정도겠냐? 죽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지. 
- 흠. 웃기는 얘기가 아닌걸요. 이런 서글픈 얘길 웃기다고 하시나요. 
- 웃기는 얘기는 다른 얘기야. 이 할머니 얘길 듣고 감자밭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급 늘어났다네. 
- 어째서요? 
- 평소에 이런 일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지. 그래서 자초지종을 너무 모르다보니, 일단 선동가들이 당사자 할머니 한 사람을 내세워 감자밭을 공격해대니까 그 말이 옳은가? 혹하는 거지. 민심은 참 가벼운 거야. 
- 선동가라고요? 
- 왜 있지 않나. 뭔가 잘 되는 일이 있다싶으면 어김없이 끼어들어 주워 먹을 게 없나 기웃대는. 그러다가 약점이 보이면 사정없이 물어뜯어 제 몫이 생길 구멍을 만들지. 선동이 거의 직업이나 다름없는 전문가들도 있고. 
-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수십 년 하다 보면 뭔가 부정한 구석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약점이라도 잡혔다든지. 할머니들에게 돌아갈 감자를 몇 알 챙겨갔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횡령이 성립된다거나…. 
- 설사 감자 몇 알 주워 먹었다 쳐도 그렇지. 수십 년 아무런 댓가 없이 밭을 일구고 농사 대신 지어준 사람들에게 그게 몰매를 때릴 일일까? 
- 에이, 인간이 본래 그런 존재잖아요. 조심을 했어야지.  
- 각자 자신들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이 잘 되는 꼴은 못 보지. 
- 에휴, 그 나라도 걱정스럽군요.
- 하여튼 복잡한 일들이 몇 가지 더 맞물려 있네. 이 감자밭 스토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배후가 있지. 
- 배후라. 
- 함부로 얘기하진 말게. 나는 저승 사람이니까 마음대로 얘기해도 되지만, 흑막을 꾸미기 좋아하는 자들은 고소고발에도 능란하다네. 
- 뭐, 이건 감자밭 이야기일 뿐인데요. ㅎㅎ.. 그리고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정도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하여튼 감자밭 스토리는 관심사네요. 그 할머니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감자밭 젊은이들과 원수가 됐겠네요?
- 웬걸. 그 젊은이들이 정말 부처님이더라고. 할머니를 붙들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조근조근 해명을 다 한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마음을 풀고 다시 감자밭으로 돌아갔다는군. 
-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서 이제 조용해졌나요?
- 아닐세. 이미 불은 질러놓았는데, 개인들끼리 화해한다고 금방 꺼지겠는가. 
- 맞아요. 사람들은, 그게 그러니까… 
- 그래. 사촌이 땅 사서 배 아픈 사람은 홧김에 그 집 감자밭이나 태워버려야지 하고 불씨를 던질지 모르지만, 불이 뒷산으로 앞산으로 번져나가면 자기 힘으로 주체하기 어려워지는 법이지. 
-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불지른 격이로군요?  
- 자기 집까지 태워먹고 말지. 그걸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게? 요즘은 그 감자밭이 아주 난리가 났어요. 진즉부터 눈꼴사나웠다고, 감자밭을 다 갈아엎어버리자고, 감자밭을 빼앗자고, 아주 난리치는 사람들이 등장했거든. 아 참, 웃긴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야. 평소부터 감자밭을 못마땅해 하던 자들이 ‘정의’라는 깃발까지 들고 몰려와서는 감자밭을 마음껏 짓밟고 다닌다니까. 
- 어이쿠. 그래도 되나요? 남들이 애써 가꾼 밭을? 
- 그동안 구실을 못 찾았을 뿐이지. 뭐 인간이란 존재가 새삼스럽게 그리 놀라운가?

道人不聞 至德不得 大人無己 
도인불문 지덕부득 대인무기

- 도를 터득한 사람은 알려지지 않고, 덕이 지극한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으며, 대인은 자기가 없다.  (<장자> 추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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