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마친 주인이 카메라를 챙기는 동안 은영이 세수를 해야겠다면서 가방을 들고 쪽문 안쪽에 있는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줍게 웃으며 돌아왔다. 힐긋 보니 연분홍 립스틱 바른 입술이 손바닥 안에 숨겨져 있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넘겨 곱창 밴드로 묶어 올린 상태였다.

“자기도 세수하고 와.” 하고 그녀가 로션을 내밀며 속삭였다.

나도 쪽문 안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발랐다. 자리로 돌아오자 사진관 주인이 빙긋 웃으며 헤어젤을 내밀었다.

거울 앞에서 헤어젤을 바르고 있는데 30대 초반의 남자가 사진관으로 들어와 우리를 힐긋거리더니 주인에게 예복은 자동차 안에 있다고 말했다.

“먼저 가 있어. 우린 마누라 오면 갈 테니까.”

주인이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가 사진관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리고 안주인인 듯한 여자가 들어왔다.

주인이 장부를 펼쳐 여자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는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며 우리에게 “갑시다.” 했다.

예식장은 도보로 채 오 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아까 신랑신부가 예식을 치른 곳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드레스와 내 턱시도 역시 아까 그들이 입던 옷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식이 없는 예식장은 적막감이 들 정도로 썰렁했다. 구둣발 소리가 울리는 텅 빈 복도, 서늘한 느낌의 시멘트 바닥, 그리고 아래층 상가에서 마치 다른 세상에서인 듯 아득히 음악소리와 함께 슈웅 콰과광, 쾅! 두두두두두두 하는 전자 효과음이 들려왔다.

사진관 주인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예복을 넘겨주고 우리를 봉황실로 안내했다.

은영과 나는 각자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예복을 들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턱시도는 약간 헐렁했지만 그런대로 촌스럽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턱시도를 걸치고 대기실을 나와 담배 한 개비를 피우자, 신부 대기실 문이 열리고 은영이 나타났다. 흰 드레스를 걸친 그녀가 미끄러지듯 내 앞으로 걸어왔다. 넥라인이 깊게 패인 드레스라 목이 길어보였다. 살만 조금 더 붙었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아니, 아니,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녀는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야 했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 은영이었다.

“우리 은영이 정말 예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아.”

“아까 그 신부보다 이뻐?”

“응. 세상에서 제일 이뻐.”

“바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바보는 ‘바라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라더라.”

“맞아. 바보.”

은영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어여뻐 입맞춤하고 싶었지만 화장이 지워질까봐 참았다.

“자, 준비 다 되셨으면 들어오세요.”

사진관 주인이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걸어 단상으로 향하는데 단상 양옆에 ‘신랑 박서준, 신부 황은영’이라고 적힌 쪽지가 보였다. 계약을 하면서 사진관 주인이 우리 이름을 물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막상 그 모습을 보자 느닷없이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좌악 소름이 끼쳐왔다.

그래…… 그것은 우리의 결혼식이었다.

결혼행진곡도 울려 퍼지지 않고 ‘신부 예쁘다’ ‘신랑 너무 웃지 마라’ 떠드는 짓궂은 하객들도 없는,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해주는 주례도 없고 애지중지 키운 딸 시집보내는 게 못내 서운해 눈시울 적시는 신부 어머니도 없는, 그러나 세상 어느 결혼식보다 소중한 그녀와 나의 결혼식.

단상 위에서, 우리는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맞절하는 사진도 찍었다. 피아노 옆에서도 포즈를 취해 찍었다. 우리는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사진관 주인의 지시대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펑, 펑, 플래시가 터졌다. 나도 그랬지만 은영 역시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진관 주인은 우리를 특별한 이벤트를 즐기는 행복한 연인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삼십 분 가량 사진을 찍고, 다시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우리 모두는 예식장을 나왔다. 어둑한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자 햇살이 눈을 찔렀다.

예식장 앞에서 사진관 주인과 헤어졌다. 그는 저녁에 사진관에 들르면 사진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막연히 걸음을 옮겼다.

격한 감정이 잦아들자 뭐라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내 안의 모든 것이 텅 비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게 왠지 민망했다. 슬쩍 보니 그녀도 약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우리는 번화가의 깨끗해 보이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출입문 옆에 커다란 고무나무 화분이 놓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조금씩 현실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음료수에 담긴 얼음조각을 오드득오드득 깨물어먹었다.

카페를 나와서는 봉화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내성천 둑길을 걸었다.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우리 앞에 두 살이나 세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아기를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운동화 밑에 무슨 장치를 했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약, 삐약, 소리가 났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해 모녀를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은영은 오히려 걸음을 늦추었다. “깨물어주고 싶도록 예뻐…….” 은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엄마가 힐긋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이엄마는 은영보다 한두 살 아래로 보였다. 별일 없었으면 우리에게도 지금쯤 그만한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동거 당시 우리는 피임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남녀가 그러하듯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뭐라고 이름지을까 하는 행복한 잡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남자아이를 낳으면 ‘영준’, 여자아이를 낳으면 ‘서은’으로 짓자고 합의를 했었다. 그녀의 이름과 내 이름에서 한 자씩 딴 이름들이었다. 영준…… 서은…… 우리 몸 부서지도록 사랑했을 우리 사랑의 흔적들…… 그러나 이제는 결코 우리 곁으로 오지 못할 우리 아이들의 이름.

어디쯤에선가 아이엄마가 아이를 안고 둑길을 내려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모녀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조금 더 걷다가 둑길을 벗어나 읍내로 들어갔다.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오자 석양이 건물의 회색 담벼락과 유리창에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은 이미 현상이 되어 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계약대로 두 장이 따로 액자에 담겨 있었다. 몇 시간 전의 우리 모습이었지만 너무 낯설었다. 나는 사진들을 보고 또 보았다. 이미 우리를 떠나간 과거 속에 남은 우리들의 이미지. 판에 박힌 드레스와 턱시도, 판에 박힌 포즈, 판에 박힌 소도구. 하지만 분명히 모델은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주례와 하객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그것은 완벽한 ‘판에 박힌’ 결혼사진이었다.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까 그 판에 박힌 평범성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잔금을 지불하고, 우리는 사진관을 나왔다.

“아, 좋다. 결혼식도 마쳤으니 이제 신혼여행 가야겠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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