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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17회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비창②

기사승인 2018.04.25  09: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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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친구가?”

“나중에 알아보니 아빠 사고 당하시기 전에 서로 사이가 안 좋았대. 연락처 아는 사람도 없었고……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는데 왜 날 안 불렀어. 남을 도울 줄 알면 도움 받을 줄도 알아야지. 그리고, 내가 남이야? 식만 안 올렸지 부부였잖아.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람이잖아. 너한테는 내가 제일 만만한 사람이라구!”

은영이 잠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간절한 빛이 돌았다.

“그러니까 지금 도와줘.”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말이야?”

“내가 그 사람 찾아냈어. 얼마 전 죽염을 싸게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산청에 갔다가 우연히 그 사람 봤어. 버젓이 알로에사무실을 내고 있더라. 자신 없어서 동생을 불렀지. 저녁이 되도록 동생이 안 오길래 나 혼자 사무실에 들어갔어. 그 사람은 막 퇴근을 하려던 참이었어. 여직원 먼저 퇴근시키고 단둘이 얘기했지. 차용증도 없어서 인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어. 후우…… 그런데 안 통했어. 사람이…… 무조건 돈 빌린 적 없다고 잡아떼는 거야. 그러더니 옆에 앉아 나를 만지면서 하는 말이 돈이 정 필요하면 어느 정도는 줄 수도 있다는 거였어.”

“뭐야? 그런 개 같은! 그 새끼 이름이 뭐야, 내가 아주 작살을 내버릴게.”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생이 도착했어…… 동생하고도 말이 안 통했어. 큰소리가 오갔어…… 그 사람이 버릇없다면서 동생 뺨을 쳤어. 내가 왜 때리느냐고 했더니 내 뺨도 쳤어. 내가 맞는 모습을 보더니 동생이 벌떡 일어나 그 사람 가슴을 걷어찼어. 그리고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옆에 있던 골프채를 휘둘렀어. 그 애가 그러는 모습 처음 봤어. 정말로 미친 듯이…… 애가…… 참을 수 없었나봐.”

“잘했어. 그런 자식은 혼나야 해.”

“그런데…… 그 사람 죽었어.”

“……?”

머리 한 쪽이 와르르 쏟아지는 기분. 한순간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다.

“……정말 죽은 거 맞아?”

“동생이 확인했어.”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나는 죽음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군대에서 총을 만지며 깨달았다. 손가락으로 작은 쇠붙이 하나만 살짝 잡아당겨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죽는 것이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이 차를 몰고 달리는 도중 핸들을 약간만 옆으로 잘못 돌려도 죽음은 득달같이 우리를 마중 나온다. 그런 것이다. 나는 아주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뒤집어쓰기로 했어…….” 그녀가 계속 말했다. “그 사기꾼을 찾은 것이 나였기 때문에, 목격자들도 많기 때문에, 다 그렇게 믿을 거야. 근처에 CCTV도 없고.”

“말도 안 돼. 동생이 그걸 받아들였어?”

“나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어.”

“……무슨 말이야?”

“겨울에 하도 소화가 안 되고 배가 아파 병원에 갔었어. 나…… 나…… 위암 삼기래.”

“거짓말 말아.”

“정말이야. 그런 걸 어떻게 거짓말해. 위 내시경 검사도 받고, CT촬영도 다 했어. 위암 삼기의 오 년 생존율은 삼사십 퍼센트쯤 된대. 육 개월 이내에 죽을 수도 있고.”

“오 년 생존율?”

“암 치료 후 오 년까지 얼마나 생존했는가를 말하는 거야.” 은영이 막힘없이 중얼거렸다. “어떤 암의 생존율이 삼십 퍼센트라면 암 환자 백 명 가운데 서른 명이 치료 후 오 년 이상 생존하고 있다는 뜻이야. 오 년이 지난 후에도 생존하였다면 적어도 그 암에 관한 한 의학적으로 완치가 됐다는 얘기고…….”

가슴 안쪽에서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아, 아, 말도 안 된다. 억장이 무너진단 말이 이런 건가.

 

그냥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나는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위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그녀네 집이 사기를 당해 알거지가 되고, 그녀의 동생이 살인을 하고, 그리고 경찰이 그녀를 살인용의자로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내 친구가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레고 그림처럼 하나씩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해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녀는 지금 겁먹고 있다. 그녀의 말에는 과장이 있다. 나는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빈 캔에 넣어 끄고 다시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수술은 잘 됐어?”

“수술…… 안 했어.”

“뭐야? 바보같이. 치료비가 얼마나 된다고 그걸 안 해! 요즘 세상에 위암이 무슨 죽을병이라고!”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계속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아빠 그렇게 되시고, 나는 세계관이 뒤바뀌는 아주 많은 일을 겪었어. 처음엔 안됐다고 안쓰러워하던 사람들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어. 우리를 귀찮아하고 얕보기 시작했어. 친척들은 하나둘 발길을 끊고, 엄마는 갑자기 늙으시고, 친구들은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출판사는 계속 급료를 미루고…… 잠긴 돈이 항상 이백만 원 넘었어. 받긴 틀린 돈이지.”

“사회운동까지 한 사람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악착같이 받아야지 그걸 왜 못 받아!”

“그것도 싸울 기력이 있을 때 얘기지.” 그녀가 마른 지푸라기처럼 힘없이 웃었다. “과외도 몇 번 해봤는데 부모 비위 맞춰야 하고, 애들 비위 맞춰야 하고…… 정말 못하겠더라.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벽이 탁탁 쳐지는 거야…… 삼십 퍼센트밖에 안 되는 확률에 그나마 남은 재산 다 쏟아 부을 수는 없었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나도 몰래 계속 씨발, 씨발, 소리가 나왔다.

우리 옆으로 검은색 그랜저 한 대가 다가와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50대 초반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남자는 내 대학시절 고전시가론을 가르쳤던 교수와 얼굴이 비슷해 보였다. 남자가 조수석에서 내린 40대 초반의 여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싸안았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웃음이 교차했다. 꾸물꾸물한 날씨도 두 사람의 웃음에 그늘을 드리우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 쪽으로 한번 힐긋 시선을 던졌다가, 두 사람은 매점 쪽으로 걸어갔다. 왠지 부정한 사이 같다는 느낌을 주는 커플이었는데, 당사자들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해 보이는 웃음은 보기 좋았다. 나는 설령 그들이 진짜 불륜사이라고 해도 지금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통화내역 뽑아보면 동생 가담한 거 나와.”

“상관없어. 발각된다 해도, 동생은 끝난 뒤에 도착한 거로 하기로 했어.”

“동생이 그러자고 했어?”

은영이 잠깐 나를 똑바로 보았다.

<계속>

이군산 kj.lee@finomy.com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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