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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9회 그 해 가을, 그리고 겨울②

기사승인 2018.02.28  09: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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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나는 꽃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면 다음에 그녀와 함께 와야지 생각했고,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해도 그녀와 함께 보기 위해 먼저 그녀의 스케줄부터 알아보았으며, 거리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을 보면 좀더 색다른 코스는 없을까 고민하곤 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언제 어디서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 나의 모든 감각이 그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

그녀보다 예쁜 여자는 많이 보았지만 그녀처럼 나를 설레게 한 여자는 없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러하듯 날마다 밤늦도록 영등포와 홍대 앞, 신촌, 북촌 한옥마을을 함께 쏘다니며 곳곳에 추억을 심어놓았다. 휴일에는 조금 멀리 서울랜드 파주 프로방스마을 등을 다녔다. 아침마다 문자로 전화로 서로를 깨워주고 만날 약속을 했으며, 밤이면 잠자리에서 또 전화로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

가장 많은 통화를 하는 사람이 그녀가 되었고, 나는 언제부턴가 벨소리만 들어도 귀신처럼 그녀의 전화인지 다른 사람의 전화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환희인지 비애인지도 분간 못할 어떤 묵직한 것이 선잠결의 새벽마다 가슴을 꾹꾹 누르고 지나갔다. 생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녀는 내 안에 들어앉아 내게로 오는 세상의 모든 것을 커다랗게 공명시켜주었다.

사귀게 된 것은 한두 달밖에 안 되었지만 그녀와 나의 인연의 끈은 14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때때로 우리가 14년 동안 계속 만나온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낯선 모습들을 봐도 당혹스럽지 않고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받아들여졌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집 앞까지 바래다준 나에게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그녀만의 공간. 그것은 주방도 없는 옥탑방이었다.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긴 했지만 살림살이라곤 몇십 권의 책과 옷, 옷걸이, 침대, 휴대용 가스 렌지, 냄비 몇 개, 소형냉장고, 전기밥통, 노트북 컴퓨터, 밥상 그게 전부였다.

옥상에는 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가끔 그곳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본다고 했다. 그곳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는 그녀를 떠올리자 내 가슴이 저려왔다. 이 쓸쓸한 옥탑방에서, 그녀는 혼자 눈뜨고 혼자 잠들었다…….

상근 간사인 그녀의 월급은 당시 70여만 원. 많은 경우 일요일도 쉬지 못했다. 그녀 정도의 학력과 능력이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그 정도 돈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서너 배를 버는 일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불평불만 없이 늘 밝은 얼굴로 출퇴근했다. 그녀는 마치 그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신의 권리는 깨끗이 포기한 것이다. 피부색이 어떻고 언어가 어떻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동족이었다.

왜 그 어려운 길을 택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고통 겪고 있는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들은 왠지 신성해 보여.”

나는 그것으로 그녀의 선택을 이해했고,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한 사람이 인생을 건 것은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녀가 접하는 ‘그들’에게 깊이 뿌리내리고 있을지 모르는 피해의식이 걱정되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사랑하는 건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만큼 힘든 일이래. 자신 있어?”

“괜찮아.”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난 그들로부터 사랑받을 공간을 닫아놓았으니까. 그냥 그들이 웃어주기만 하면 돼. 고맙다는 말도 없어도 괜찮아. 그것만으로 보답이 돼.”

테레사 수녀는 자원봉사자를 채용할 때 딱 세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나요?

은영은 그런 여자였다.

주의주장을 강하게 고집하는 성품도 아니었다.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한국은 그들이 젊고 아름다운 시절 온 힘을 다해 산 땅이야. 그런 그들에게 자본주의 비정함만 안고 돌아가게 할 순 없잖아? 옛날에 광부들은 탄광으로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대. 카나리아는 산소가 부족하면 노래를 멈추고 죽었어. 그러면 광부들은 서둘러 갱도를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던 거지. 잠수함을 탈 때는 토끼를 데려갔대. 토끼는 수압이 적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사람보다 일곱 시간 먼저 죽으면서 사람들 목숨을 살렸대. 한국사회가 카나리아가 죽어나가는 탄광, 토끼가 죽어나가는 잠수함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

뭔가 모르게 반박할 수 없는 얘기였다. 우리도 그런 시대를 겪지 않았느냐, 그들 고국의 노동환경은 한국의 노동환경보다 더 열악하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면서까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오고 있는 것 아니냐, 얼마든지 따지고 들 수 있었지만 어쩐지 치사하게 느껴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단발머리 찰랑이며 모래톱을 달려가던 어린 여자애가 이만큼 컸구나, 나는 그저 속으로 흐뭇해했을 뿐이다.

 

옥탑방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갑작스런 맹추위가 몰아닥친 어느 날, 그녀의 옥탑방에 가보니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보일러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피식피식 겸연쩍게 웃으며 사무실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을 켜고 잔다고 말했다. 세수도 사무실에서 한다고 했다. 위잉, 위이잉󰠏󰠏󰠏 옥상을 지나가는 바람이 쉬지 않고 그녀 방의 창문을 흔들어댔다. 나는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

“바보. 양동이 가져와.”

“양동인 뭐에 쓰려고?”

“물 끓여서 녹여야지.”

“삼한사온인데, 날 풀리면 저절로 녹잖아.”

그녀가 천진한 얼굴로 대꾸했다.

“어이구 답답. 잘못하다 수도관 터지면 졸지에 난민 된다구, 알아? 그리고 다음주도 계속 한파야. 요즘은 세상이 미쳐서 삼한사온 같은 거 안 통한다구, 알아?”

우리는 양동이를 하나씩 들고 옆집에 가서 물을 얻어왔다. 그녀에게 가스 레인지로 물을 끓이게 했다. 물이 끓자 냉동고 같던 부엌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언 수도꼭지를 수건으로 싸고 조금씩 끓는 물을 부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계속 물을 끓이게 하고 식을 만하면 수도꼭지에, 노출된 파이프에, 벽에, 끓는 물을 부었다. 잘 되는 거야? 잘 되는 거야? 그녀가 옆에 붙어 졸졸 따라다니며 물어댔다. 십여 분만에 수도꼭지에서 쪼르르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수도관 안에서 쿨럭쿨럭 소리가 나더니 이내 콸콸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탄성을 질렀다.

곧이어 보일러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해. 마술사 같아.” 하고 그녀가 말했다.

금세 방바닥이 따뜻해져왔다. 요를 깔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 공기가 훈훈해지고 바닥이 절절 끓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은 위협적이지 못했다. 은영은 이불 속에 포옥 파묻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 편안해. 자기만 옆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어.”

“당연하지.”

“왜?”

<계속>

이군산 kj.lee@finomy.com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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