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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장편소설] 김소월 전기-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_ 3장 3.1독립운동과 폐교(4)

기사승인 2023.01.30  08: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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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1독립운동과 폐교

 

7

 

오순의 집을 거쳐 온 어둠이 석양을 몰아냈다. 정식이 홀로 강변의 갈밭 사이를 지나갔다. 동녘에서 붉은 달이 솟아올랐다. 달빛을 쬐던 갈게들이 인기척에 놀라 갈대 속으로 허둥지둥 달아났다. 잠자리를 찾아 갈밭에 깃을 접는 물새들이 부산을 떨었다.

 

저녁 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없는데

발길은 누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 ‘만나려는 심사’ 전문

 

정식이 나지막이 자작시를 읊조렸다. 만날 사람은 떠났고, 오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밤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8

 

정식이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금광 채굴 현장에 다녀왔다. 집안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밝아졌다. 정식은 배찬경처럼 학업을 계속 잇게 해주길 기대했다.

“오산학교는 당장 재건키 어렵다더라.”

할아버지가 뜻밖에 돈을 내놓았다.

“딸도 볼 겸 처가에 다녀오너라.”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참에 정식의 꼬인 심사를 풀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보았다. 오 씨 집 근처엔 얼씬하지 마라. 동네 사람들이 미친놈 2대가 나왔다고 수군거리면 어쩔 테냐? 아마 이런 말도 덧붙이고 싶었을 터였다. 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꾸 금기를 언급해서 금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마침 정식은 바람이라도 쐬어 숨통을 터야겠다는 생각을 키우던 참이었다. 당시(唐詩)를 읽고, 김억의 당부대로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시도 탐독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안정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보고 싶은 생각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시 머릿속에 스칠 뿐이었다. 아이에게, 아내에게 응당 해야 할 도리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오산학교가 불타는 광경까지 머릿속을 휘저었다. 자신과 동무들이 화염에 휩싸여 아우성치다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를 몇 차례 경험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은 배찬경마저 엊그제 경성으로 떠났다. 배제학교로 적을 옮긴다고 했다. 꿈꾸던 찬란한 미래가 아무것도 겨냥할 수 없는 암흑세계로 변했다. 정식은 돈을 받아들고 사랑방에서 물러나왔다.

 

9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저녁 무렵 정식은 평양역에서 가까운 장별리의 한 여관에 몸을 부렸다. 지명 장별리(將別里)가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장별리(長別離)와 기이하게도 발음이 같았다. 그것이 장별리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런데 장별리는 기생들의 노랫소리와 환락에 취한 사람들의 소음이 일상화된 거리였다. 날이 저물어 다른 데로 여관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남단동 집을 나온 뒤 정식은 처음엔 할아버지 당부대로 서산 평지동 처가로 향했다. 첫 대면하는 딸 구생을 안고 업고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그런데도 마음 속 텅 빈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상대가 짝을 찾으면 가슴에 틀어박힌 연모의 감정이 훌쩍 뽑혀 나간다고 하던데, 어쩐 일이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오순에 대한 감정은 단지 남녀 간의 사랑에만 머물지 않는가 보았다. 오누이의 사랑과 남녀 간의 사랑이 섞인 어떤 것? 장모는 자꾸 한눈을 파는 정식에게 심신이 쇠약해졌다면서 여행을 권했다.

평양행 열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비가 내렸다. 버드나무들이 한껏 물이 올라 치렁치렁 늘어졌다. 고향에서는 오월 장마를 고사리 장마라고 불렀다. 지금쯤 어머니나 작은어머니는 남산 주변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리라. 자식에 대해서는 한숨을 돌렸으리라.

정식은 기생들의 노랫소리에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이제 자식까지 두었다. 누이는 혼인을 했다. 현실이란 이처럼 희망과 다르게 냉혹하게 흘러가지. 가당찮은 희망을 현실로 간직하는 사람을 바보라 하지. 바보? 바보라는 말의 부정적 의미가 켕겼다. 과연 내가 바보일까? 그렇지. 바보야. 정식은 허리에 힘을 주어 벌떡 일어났다.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바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기 싫어 일부러 낮에 거리에서 본 소회로 생각을 바꾸었다.

 

연분홍 저고리 빨갛게 불붙는

평양에도 이름 높은 장별리

금실 은실의 가는 실비는

비스듬히 내리네, 뿌리네.

털털한 배암 무늬 양산에

내리는 가는 실비는

위에랴 아래랴 내리네, 뿌리네.

흐르는 대동강 한복판에

울며 돌던 벌새의 떼 무리

당신과 이별하던 한복판에

비는 쉴 틈 없이 내리네, 뿌리네.

 

- ‘장별리(將別里)’ 전문 <계속>

이정 leejungmj@naver.com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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