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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량의 경제인문학 칼럼] 우리는 왜 돈을 배신하지 못하는가

기사승인 2022.04.27  09: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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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의 시선으로 본 경제 이야기

   
▲ 유휘량 작가

우리는 참 돈을 좋아한다. 돈에는 변수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보다 돈을 믿는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세상의 억지 속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우리는 돈의 가치를 믿는다. 우리는 돈을 배신하지 못한다. 사람은 배신할 수 있어도 말이다.

사람은 늘 변수요인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돈을 활용하고 돈을 버는 행위를 한다. 결국 돈과 사람은 별개가 아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잃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 때문에 돈을 벌기도 한다.

돈은 세계의 객관적인 표상이다. 그것은 투명하며 숫자라는 투명한 언어적 기호로 작용한다. 경제적 가치와 잠재적 가치를 돈으로 표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만큼 돈은 변수요인이 없기 때문에 잠재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용이하다. 이러한 객관적 표상으로서의 돈은 사람들의 신뢰를 형성하며 경제 활동을 지속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객관적 표상 앞에 우리의 존재성은 무색해진다. 월급이 노동의 가치를, 부동산이 내 인격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세상의 억지들은 우리는 납득하며 산다. 그것이 부당한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철학자 지젝은 자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자본이 사회적 믿음을 형성하는데 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자본의 가치야말로 서로의 신뢰를 보장하는 물질로서 작동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러한 물질이 우리의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우리는 돈이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이 종이라든가, 숫자라든가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가치 있다고 믿으며 행위하기에 자본은 건재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돈이라는, 종이와 숫자 형태의 자본에 대해 불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가 그것이 가치 있다고 믿음으로서 돈 자체는 객관적이고 가치 있는 표상이 된다. 우리가 만일 돈 자체를, 그것이 그저 종이라는 것, 숫자라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경제활동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원시 부족민들에게 달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그러한 상징적 질서를 만듦으로써 돈의 가치를 형성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딱히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돈은 애초에 사슬적 형태를 띠고 있다. 돈은 움직이며 그 돈에 따라서 모든 것이 관계 된다. 그래서 돈으로 물건을 사고 물건으로 돈을 받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돈에 특정한 가치를 부여했고 그것을 서로가 신뢰하기 때문이다. 마치 언어처럼 말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써야 한다는 일정의 믿음이 있다. 만일 외국어로 말을 하면 우리는 그 외국어를 발화하는 자가 우리의 질서 속에 있지 않다는 사실과 함께 불안을 느낀다.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은 이 불안을 해소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배신할 수는 있어도 돈을 배신하진 못한다. 이미 객관적 표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돈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재독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말처럼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타자들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 타자에 자리에 인터넷이, 자본이 놓이게 되면서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만남이 때론 불완전한 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배신하는 것이, 사람을 버리는 것이 쉬운 세상이다. 인문학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이제 사람에 대한 인내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주식과 같은 것에 대한 인내뿐이다. 사람에 대한 인내를 잃어버린 우리가 더이상 인간적으로 사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철밥통이라 부르는 공무원을 포기하는 이유는, 공무원이 아무리 자본적으로 삶의 지속성을 보장해 준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까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은 일정의 의무감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 적은 돈과 과중한 업무는 자기 자신을 박탈하게 만들어 버린다. 거기엔 자신이 없고 안정성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공허함을 많이 느낀다. 돈을 따라가니 대기업의 무시무시한 가치평가가 두렵고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은 받은 돈에 비해 가치 입증을 못하는 것 같고 중소기업으로 가기엔 인간적인 평가를 못 받을 것 같고…. 그래서 돈을 벌면 주식과 비트코인을 하고…. 직업적 의무보단 돈 자체를 믿게 되는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들이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돈을 배신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유휘량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 석사 졸업, 현대문학 현대소설 전공 박사수료

지금까지 시를 꾸준히 써왔고,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부마항쟁기념재단, 숲과나눔재단,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책임자로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으며, 통일인문학단, 통일부, 국방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정신문화재단 등에서 논문으로 여러 차례 수상을 하였다. KCI에 논문을 다수 게재하였으며, 공저로 <몸의 미래 미래의 몸>이 있다. 현재 한겨레교육에서 문학, 정신분석, 철학 등 문예창작에 필요한 이론들을 강의하고 있으며 2022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로 등단했다.

차종혁 기자 justcha@finomy.com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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