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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신문 2022 신춘문예-단편소설 대상] 고상한 소스의 세계

기사승인 2022.01.03  13: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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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미란

고상한 소스의 세계

 

                                                                                                                     원미란

 

휴대폰이 깨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버스는 휴대폰을 육중한 바퀴로 누르며 유유히 떠나버렸다. 바랑도 모정리, 이 정류장에서 내리는 승객은 나 혼자였다. 서울에서 바랑도까지 오는 동안 등이 축축해져서 가방을 옆 좌석에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게 실수였다. 빠르게 달리던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을 때 나는 바로 이곳이 내가 내려야 하는 모정리라는 걸 알고 당황했다. 서둘러 여행용 백팩과 작은 크로스백을 들고 급하게 하차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놓쳐버린 거였다. 낭패스러운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이곳 바랑도의 시골길은 하차하는 사람이 적어 버스가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십오 분이나 빨리 도착하다니.

   
 

휴대폰을 주우려고 몸을 숙였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운전기사는 나를 내려주자마자 곧바로 버스를 움직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 소리를 내며 버스 뒷바퀴가 휴대폰 위로 지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순간 따악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크게 들렸으며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예상대로 액정에는 무수히 많은 금이 가 있었다. 휴대폰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고 껐다 켜보았다. 우우웅 하고 부팅을 시작하나 싶었지만 화면은 밝아지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부터 불운한 일이었다. 고장 난 휴대폰을 가지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목적지인 커피 박물관에 가서 태 선배를 만나기만 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해결될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냈다.

나는 휴대폰이 작동되는지 살피느라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백팩을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크로스백도 다시 단단히 매고 걷기 시작했다. 도로변은 숲으로 우거져 있어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민가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 박물관 같은 게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지도 검색으로 확인한 위치를 떠올려보았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이십여 분 걸어가면 된다는 희미한 기억을 붙잡고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 새털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은 푸르렀고 도로 양옆에는 연보라색 수국이 줄지어 피어 있었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푸릇푸릇한 초목이 내뿜는 향기가 싱그러웠다. 그래도 인적이 없는 시골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두려움에 머리가 쭈뼛거렸다. 태 선배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떠나왔던 그 순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백팩 안에는 태 선배에게 돌려줄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미국인 여자가 호주의 원주민 부족과 함께 여행한 뒤에 쓴 에세이였다. 오스틀로이드라는 원주민 부족은 수개월에 걸쳐 호주 사막과 늪지를 횡단하면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갔다. 그들은 숲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고 쓰레기뿐만 아니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걸 규율로 삼았다. 그랬기에 부족장은 도보여행 전에 미국인 여자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곧이어 천 쪼가리 하나를 건네주었고 여자의 소지품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어떤 양해를 구하지도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그 놀라운 상황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들의 몸에 밴 온화한 미소와 친절한 태도는 상대방의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데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나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그런 여자의 처지에 비하면 나는 한결 나은 편이라고, 그저 휴대폰 하나 고장 났을 뿐이라고,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완전히 새로운 곳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숨어 있다가 우주의 텔레파시가 통해서 오늘을 맞게 된 거라고.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걸음도 빨라졌다.

저 멀리 무엇인가 크게 적힌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듯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COFFEE LAND & CAFE 라는 글자 바로 옆에 커피 박물관이라고 친절하게 씌여 있었다. 벽면이 거칠게 마감된 기하학적인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전면의 통유리로 비치는 실내조명과 고급스런 분위기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심호흡을 하면서 유리문을 힘껏 밀고 들어갔다.

진한 커피향이 훅 끼쳐왔다. 가장 먼저 지하와 이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가 생각보다 커서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내려는 듯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짧은 단발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직원에게 태 선배의 이름을 대며 사장님 계시냐고 물었다. 직원은 잠시 사장의 이름을 떠올리는 듯 가만히 있다가 그런 분 없는데요, 하고 말했다. 다시 태 선배의 이름을 천천히 말했다. 역시 상대는 노랑머리가 너풀거리도록 머리를 내흔들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순간 뜨악한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시선을 돌려 메뉴판 첫 줄에 있는 블루마운틴 커피와 허니버터브래드를 주문했다. 직원이 서있는 뒤편에 걸린 벽시계의 시침은 3을 향하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잠시 기다리자 노랑머리 직원은 커피와 빵을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솟아올랐지만 꾹 참았다. 태 선배가 이곳에 없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내가 상상했던 일 중 최악인 셈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해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나에게 남아있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실마리를 풀어가야 했다.

태 선배를 다시 만난 것은 삼 개월 전 어느 봄날 오후였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밥맛도 없고 잠 못 이루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다니던 직장은 어머니 병간호로 일 년 전에 그만둔 상태였다. 그전부터 나는 크고 작은 출판사 계약직 근무를 반복했기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내성이 생겼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이어지자 인간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고 금방 외톨이가 되곤 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는 과년한 딸과 단둘이 살던 어머니는 자주 한숨 쉬듯 이야기했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별 남자 없다. 빨리 결혼하라는 말도 지쳤을 무렵 시작된 어머니의 입버릇이었다. 나는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어머니 임종 뒤에 자주 생각났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과 그래 그 말이 맞아, 하는 공감이 동시에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과한 욕심을 버리고 살라는 어머니의 유언 같기도 했다. 어머니가 남긴 빈자리는 생각보다 커서 마음을 채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동창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각자 살기 바빠서 긴 시간 연락이 끊겨 있었다. 여자 동기들은 결혼해서 자기 살림을 하느라 동창 모임을 찾아다닐 여유가 없었고 남자 동기 몇 명만 꾸준히 동창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나 역시 몇 년에 한 번씩 나갔기에 그곳에 어머니의 부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동기 이찬이 동아리 동창회에 나오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외로웠던 탓인지 이찬의 연락이 내심 반가웠다.

동아리는 사회과학 학술동아리였다. 당시엔 동아리 내부에서도 소위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찬은 비운동권이었다. 물론 이찬도 나와 함께 선배들이 제시해주는 커리큘럼에 따라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세미나에 참여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집회 시위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고 나중에는 전공 공부에 매진하다가 대기업에 들어갔다. 한때는 우리도 정치적인 성향이 전부인양 여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한때 어떤 입장이었다고 거론하는 것조차 성숙하지 못한 거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생겨났다. 우리 모두 어느 사이에 별다를 것 없는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다.

이찬은 카톡으로 혹시 태 선배한테 무슨 연락이라도 받았느냐고 물어왔다. 아니라고 답하자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지 강아지가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찬은 학교 다닐 때에도 태 선배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었다. 그래서 더욱 말조심하는 듯 보였지만 풍기는 뉘앙스로 볼 때 좋지 않은 감정이 배어있는 듯 했다. 이번 동창회에 태 선배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선배 때문에 안 나온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라고, 그래도 우리 동기 중에 그 선배랑 친했던 사람은 너니까 이번에 꼭 나오라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나는 곰돌이가 굿바이 인사하는 이모티콘으로 답을 대신했다.

태 선배는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자기 고향인 무천에 내려가서 노동운동을 했었다. 육 년 선배라서 나와는 접점이 없었다. 그러나 선배가 동아리에 대해 각별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신입생 시절에 떠밀려 참석한 술자리에서 태 선배를 처음 보았다. 선배는 소주를 마시면서 노동운동의 현실이 소주만큼 쓰다고 말했다. 눈빛이 살아있는 선배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술자리가 파한 뒤에 나는 선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안부 편지를 보냈다. 마치 초등학교 때 국군장병아저씨에게 편지 보내는 그런 비슷한 거였다. 무천으로 돌아가 내 편지를 받은 태 선배는 세 장에 걸친 답장을 보내왔다. 편지는 ‘노동해방’, ‘민중세상’ 등의 용어로 채워졌고 마지막에 통일염원 00년 0월 0일로 끝맺고 있었다. 편지 교환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 년 정도 지속되었다.

   
 

동창회가 열린 곳은 H대학 근처의 한 횟집이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술자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술이 서너 순배 돌고 난 뒤였다. 나는 어디에 앉을까 하며 두리번거렸다. 태 선배는 멀리서도 구별되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앉으라며 가방이 놓여있던 옆자리를 비워주었다. 동창회는 열댓 명 정도로 조촐했다. 안주 접시 몇 개는 이미 동이 났고 소주와 맥주병도 거의 비어 있었다. 식당 직원이 급히 가져다 놓은 맥주잔에 옆에 앉은 동기가 맥주를 따라주었다. 나는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띠고 눈인사를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함께 했던 이들은 분명 반가웠지만 어머니가 남긴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태 선배가 입을 열었다.

“야, 진아야. 오랜만이다. 근데 너는 시집도 안 가고 뭐했냐?” 그 말에 내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태 선배를 쳐다보았다. 그때 앞에 앉은 선배의 동기가 큰소리로 말했다. “야 임마, 결혼 못한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었고 태 선배는 한 잔 마시자며 맥주잔을 들었다. 나 역시 잔을 들면서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한 마디 했다. “선배가 나 시집가라고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뭘.” 그 말에 선배는 킥킥거렸다. 그러곤 느닷없이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무천 내려왔을 때 자기를 좋아해서 내려온 줄 알았다며 계속 웃음을 흘렸다. 말끝에 웃음을 덧붙이는 습관은 여전했다.

내가 무천에 내려간 일이라면 대학 졸업하던 해의 일이었다. 볼일이 있었던 것도, 그렇다고 엠티나 농활도 아니었다. 분명히 나 혼자 태 선배를 보러 다녀왔다. 나는 선배가 그 말을 했을 때 이십 년이나 지난 그 일이 선명하게 떠올려졌다. 선배는 이 년 동안 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무천이라는 곳이 얼마나 근사한 곳인지를 여러 번 말했었다. 그런 말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로 다음에 꼭 구경 가겠다고 답장을 썼지만 정말 그곳에 가보리라는 결심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선배도 분명히 당황스러웠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과한 리액션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런 모습은 물론 부담스러웠지만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러서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보다는 한결 나았었다.

나는 그 당시에 캠퍼스 커플로 연애 중이었다. 오랜 연애를 끌어오면서 공기같이 편안했던 그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결혼 상대는 어때야 하는지, 언제 결혼해야 할지 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고민은 해결되었다. 그는 신입사원으로 정신없다는 핑계로 만나는 횟수를 줄이더니 나에게 잠수이별을 선물했다. 그 일로 나는 사람이 얼마나 천박해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연애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가장 깊은 인간관계라서 상대를 잘 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이별 뒤에 내가 누구를 만나고 사랑했는지 알 수 없다고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 아프게 지나갔다.

아무튼 나는 무천에 내려갈 당시에 가끔씩 다투기는 해도 그렇다고 헤어질 이유도 없는, 눈만 뜨면 한 남자만 만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눈 돌려보고 싶은 욕망을 그런 식으로 달래고자 했는지도 몰랐다. 서울에서 멀고 먼 무천이라는 곳으로 내려가면서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선배를 보러 가는 행동이 내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비춰질까 걱정되었다. 선배가 나를 오해하면 어쩌지, 하고 고민하다가 최대한 말을 줄이기로 했다. 과한 반응과 웃음을 줄이면 선배는 아마 순수하게 바람 쐬러 내려왔다는 내 말을 그대로 믿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의도는 적중했고 하루를 묵는 동안 선배와 그 어떤 섬씽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배는 요즘말로 모태솔로였고 아마도 여자 쪽에서 적극성이 없으면 절대 로맨틱한 행위를 먼저 할 사람이 아니었다.

선배는 무천의 바닷가 근처에서 민박집을 잡아주고 자기는 집에 가서 자겠다고 했다. 선배 집은 차로 삼십 분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선배는 민박집을 나서면서 이상하게 쭈뼛거렸다. 내가 붙잡을 줄 알았겠지만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그럼 내일 보자는 아주 쿨한 인사였다. 선배는 그 말에 주춤거리며 민박집을 나갔다가 할 말이 있는 듯 다시 들어왔고 뭔지 모를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자기 집으로 갔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선배의 개그맨 같은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이불 속에서 웃다가 곧바로 외딴 곳에서의 밤이 무섭다고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피로가 몰려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온 태 선배는 시내로 가서 식사를 하자며 차에 타라고 했다. 그 차는 티코였다. 쇼트트랙을 하듯이 좌회전할 때 왼팔을 창밖으로 내놓고 운전해야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둥,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차가 멈춰서 살펴보니 누가 뱉은 껌이 바퀴에 붙었다는 둥 우리는 그 당시 유명했던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낄낄거렸다. 그러곤 창문을 활짝 열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맞으며 무천 중심부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라는 곳으로 갔다. 선배는 그곳에서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소스를 얹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맛있는 고기는 소금 맛으로 충분하며 소스를 끼얹으면 오히려 고기의 풍미를 느낄 수가 없다고, 자연에서 나온 모든 식재료는 고유의 간이 되어 있는데 굳이 그 위에 설탕을 졸여 끼얹은 게 싫다고, 그러면서 사람도 음식처럼 소스를 덮지 않은 상태가 좋다고 씩 웃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테이크에 끼얹은 우스터 소스, 바게트 빵 위에 올린 크림 소스, 양고기 잡내를 없애준다는 민트젤리 소스, 꼬마김밥을 찍어먹으면 마약처럼 중독성이 생긴다는 머스타드 소스....... 제각각 다른 소스인 것 같지만 모두 단맛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선배의 말처럼 우리의 삶에도 소스가 덮여있는 것 같았다. 모든 관계가 인위적이고 순간적인 달콤함만 추구하는 듯 보였다. 모두 각자의 진심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어쩌면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태 선배가 이십 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동창회 자리에서 꺼내놓았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당시 나의 연애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태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들의 표정에 신경이 쓰였다. 남자친구가 버젓이 있는데 혼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온 것이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싶어 순간 수치감을 느꼈다. 다행히 선배는 그 일이 자신의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고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만나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동창모임의 속성이지만 나로서는 그리 달가운 화제가 아니었다.

달가운 화제가 아닌 건 그 다음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찬은 나와 대각선 방향에 앉아서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의 진위를 따지고 있었다. 그러고는 한참 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제 안건을 말하겠다며 일어섰다. 내가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 동안 이찬이 동창회장이 되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장학기금이 얼마 들어왔고 얼마 나갔고 하면서 이런 전통이 유지된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고 이찬이 말하자 모두 박수를 쳤다.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선배들 중심으로 꾸준히 기금이 조성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눈을 꾹 감았다. 그만큼 장학기금이라는 말에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무렵 동아리 졸업생들은 학비 마련하기가 어려운 후배를 돕는 제도를 만들었다. 나는 그 기금의 첫 수혜자였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홀로 우리 남매를 키웠는데 변두리의 구멍가게로는 대학 등록금을 여유롭게 대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오빠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지만 더 공부하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학비가 어머니의 큰 짐이었다. 늘 아르바이트나 학내 근로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던 나는 휴학까지 했지만 그 다음 학기에도 여전히 등록금을 내기가 버거웠다. 그런 사정을 태 선배에게 보내는 편지에 푸념하듯이 썼는데 아마도 졸업한 선배들의 귀에 들어간 것 같았다.

뜻밖의 수혜자가 되었지만 나라고 해서 장학기금을 받는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정 형편은 나보다 더 어려운데도 내색하지 못한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미안함과 함께 선배들에게 잘 보여서 특혜를 받았다는 기분이 꺼림칙하게 남아 있었다. 장학기금이 결정되고 나자 수다스러운 어느 여자후배가 자기 동기들끼리 했다는 말은 내게 비수가 되어 꽂혔었다. 진아 언니 집 사정을 선배들이 어떻게 알고 결정했는지 모르겠다는. 이 말은 내가 만나는 선배들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비굴하게 떠들고 다닌 것 같은 뉘앙스를 주면서 나의 수치심을 건드렸다.

한 학기 학비를 충당할 만큼의 장학기금을 받고나서 동아리에 대한 부채감이 생겨났지만 졸업한 뒤에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살기가 바빴다. 사실 오랫동안 그런 종류의 감정을 잊고 지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었다. 나는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때 건배를 하자고 잔을 들면서 던진 이찬의 말이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번에 학비 내기 어려운 후배가 있어서 장학기금을 모으고 있다며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 다시 주위가 소란해졌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내가 기금을 내겠다고, 큰 거 한 장이면 후배 한 명 등록금 내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무심코 던진 말치고는 화력이 센 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태 선배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나는 별거 아닌데 왜 이런 반응이냐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음을 띠었다. 그러자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 하는 함성소리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내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박수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선후배들은 하나같이 로또 당첨됐느냐, 강남 아파트를 팔았느냐면서 본인들이 로또에 당첨되고 강남 아파트 주인이 된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아무리 박수와 함성이 울려 퍼지더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내 안에 내재된 부채감이 무거워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가난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병환이 깊어진 어머니는 자신의 수명을 단축하면서까지 유산을 남겨주었다.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딸에게 살아갈 힘이 되기 바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치료비로 더 이상 돈을 쓰지 말라면서 약물 투여를 거부했다. 약을 쓰면 무조건 낫는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돈이 있는데 왜 치료를 거부하느냐는 말에도 어머니는 단호했다. 그 돈은 네 돈이라는 게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런 큰 단위의 액수는 우리 모녀가 살면서 손에 쥐어본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평생 넉넉하게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동네에서 혁신도시 조성이니 정부청사 건설부지 지정이니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최근 들어 우편물이 날아오고 시청직원이 방문하고 난 뒤 바로 집과 가게가 매도되었다. 어머니와 살 작은 집을 구하고 남은 돈이 통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나는 통장에 찍힌 숫자 단위를 천천히 헤아려 보았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어머니가 평생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남기고 간 돈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돈을 어디에 써야할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빠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환을 알려도 아무런 답이 없던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식장에 잠시 참석하고는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혼자 남아 어머니 유품을 정리했다. 오래된 가구며 가전제품을 하나씩 처분하면서 지독하게 쓸쓸한 무언가가 가슴을 스쳐가는 걸 느꼈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순식간에 삼사십 년쯤 세월이 흘러가버린 듯한 텅 빈 기분이었다. 살림살이를 늘리는 데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노후를 보내려면 돈이 필요하다지만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았다. 늙으면 시골 가서 텃밭 일구며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탓인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학기금을 내겠다는 말을 던지고 나자 무엇인지 모르게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었으나 그저 이십여 년 전에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런데 더 큰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을 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차로 간 술자리는 커피와 맥주를 같이 파는 주점이었다.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는 길가에 나란히 이웃한 노란 가로등과 벚나무가 꽤나 운치를 자아냈다. 벚꽃은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테이블을 적당히 옮겨서 자리를 잡고 빠르게 메뉴를 정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뜨거운 김을 불어가며 마셨다. 봄밤은 깊어가고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몇몇은 언성이 높아졌고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쳐서 돌아보자 태 선배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나에게 술 끊었느냐고 물었다. 한눈에도 선배는 술에 취했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술을 거의 안 마신다고 선배도 귀가하려면 그만 마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선배는 피식 웃으며 걱정 말라고 하면서 화제를 장학기금으로 바꾸었다. 갑자기 부자가 됐느냐고 묻는 선배에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쉽게 말해 어머니의 유산이고 아직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는 돈이라고, 딱히 다르게 말하거나 숨길 이유가 없었다.

나는 노랑머리 직원이 가져다 준 허니버터브래드를 나이프로 천천히 잘랐다. 그러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때 그 말이 지금의 상황을 불러온 거라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그때 말했던,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던, 그러니까 정말 어리석게도 눈먼 돈이라고 했던 바로 그 말에서 비롯된 거라고.

맥주잔에 술을 따르면서 태 선배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천을 떠난 지 십 년쯤 되었다고, 노동조합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사측에 의해 번번이 무산되고 급기야 모함을 당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회사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근무했던 자신이 타지에서 온 사람의 농간으로 밀려나자 죽을 만큼 아팠다고, 심한 내분비 질환을 고치려고 자연치유식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그러곤 여러 명상관련 책으로 마음을 다스렸다면서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돌연변이 인간종에게 남기는 원주민의 메시지>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날개부분을 대충 읽고 나서 선배에게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래, 빌려줄게. 이 책에 오스틀로이드라는 호주 원주민이 나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그 이유가 뭔지 아냐?”

“오스틀로이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나온 말이에요?”

“아,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이 부족은 호주를 침략한 사람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더 이상 자손을 낳지 않기로 했어. 그러니까 너랑 나 같이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는 사람은 뭔가 훌륭한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지.”

“나는 그렇게 거창한 생각으로 결혼 안하는 게 아닌데?”

“그럼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환경을 파괴하고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종은 더 이상 번성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이제부터 자손을 만들지 않겠다, 어때? 그럴듯하지 않냐?” 킥킥거리며 농담을 진담처럼 하고 진담을 농담처럼 하는 선배의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선배는 책을 나에게 건네주며 지금은 바랑도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섬에 자리 잡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여러 종의 커피나무를 키우며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원래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에서는 커피가 자라기 어려운데 몇 년간 연구하면서 방법을 찾아냈다고, 아직 작은 규모지만 커피 전시도 하면서 카페 이름을 특색 있게 박물관이라고 지었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에 노동운동 하려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선배 일이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서울에서라면 지금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을 텐데. 그만큼 이름도 낯선 바랑도에 혼자 내려와 막막한 한낮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각낸 허니버터브래드를 포크로 찍어서 캐러멜소스를 묻혔다. 소스가 빵조각에 주르르 흘러내렸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안에 넣었다. 찌르르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달아서 침이 입안에 금방 고였다. 빵을 다 먹고 나자 남은 캐러멜소스 자국이 추상화 그림처럼 보였다. 혼란스러운 나의 마음 같았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부하겠다고 말한 이유가 힘들었던 시절에 혜택 받았던 것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자존심을 되찾고 싶은 얄팍한 허세였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 두 가지가 섞인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기부하겠다고 말한 뒤에 나는 또다시 무리한 일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 일로 내가 속고 속이는 정글의 한가운데에 놓여진 것 같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은지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차 술자리가 파하고 나자 태 선배는 대리기사를 불러서 자기차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선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부탁 좀 들어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무슨 부탁이요, 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선배는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에 손을 갖다 대고는 문질렀다. 그러고는 머리를 약간 숙이고 말했다.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다가 자금이 막혔고 곧 어음이 돌아온다고, 지금 고향 무천에 있는 집을 팔려고 내놓았으니 팔릴 때까지만 돈 좀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눈을 급히 깜빡거리다가 크게 뜨고 선배를 쳐다보았다. 선배는 나의 시선을 피한 채 너한테 신세지고 살 생각은 없다고, 꼭 갚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 못 믿겠으면 바랑도에 와서 직접 봐도 된다고, 그리고 빌려주기 싫으면 안 빌려주어도 상관없고 그냥 네가 혹시 여윳돈이 있나 해서 물어본 거라고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갑자기 명치와 아랫배가 딱딱해지며 아파왔다. 나는 손으로 살살 배를 쓰다듬으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더워진 날씨이야기를 꺼냈다. 그 다음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곧이어 대리기사가 우리 집 근처에 다 왔다고 했다. 나는 선배에게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를 하고 내렸다. 캄캄한 골목길을 걸어 집 안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그날로부터 이틀 지난 뒤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계좌번호를 물었고 돈을 보냈다. 곧이어 고맙다고 문자가 왔다.

선배가 빌려준 책에는 현대문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원시적인 생명력을 간직한 부족민의 세계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쳐진 문명인은 서로 싸우며 욕망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원주민 부족이 자연에 동화되는 과정을 읽으면서 어느새 그 세계에 이끌렸다. 한편으로 태 선배와 동행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남긴 빈자리가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 낯설었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산산조각 난 것은 며칠 뒤 이찬에게 전화를 받고서였다. 이찬은 장학기금을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혹시 태 선배가 돈 빌려달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이찬은 그 선배한테 전화 안 받은 사람이 없으니까 너도 조심하라고 했다. 동창들은 그 선배가 하는 일마다 안 돼서 알아서 피하고 있다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라고, 그러다가 머쓱해졌는지 너도 나이가 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나는 화가 나서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테이블에 놓여있던 머그컵을 들어 개수대에 던졌다. 손잡이가 떨어져나갔다. 공연히 수돗물을 틀어 놓고는 싱크대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는지, 욕심을 버리라는 명상서적을 빌려준 태 선배가 왜 위선적으로 느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결정한 일을 자책한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불신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이상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며칠 시간을 보내다가 선배가 빌려준 책을 펼쳐들었다. 띄엄띄엄 읽다가 선배 얼굴이 떠오르면 책을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가끔은 공원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생각해보면 내가 선배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후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가도 때때로 아무도 걸려들지 않는 그물에 나 혼자 걸려들어 조롱거리가 된 것 같았다. 기분 나쁜 악몽을 꾸기도 했다. 나는 선배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불시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랑도에 직접 와서 보라고 선배가 말했으니까 연락하지 않고 가는 게 큰 결례는 아닐 것 같았다. 무엇보다 거금을 빌려준 중요한 비즈니스 관계라는 생각에 애써 용기를 냈다. 그렇게 떠나온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이곳은 태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는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크고 넓은 곳에 통유리 바깥으로 선 베드가 여러 개 있고 커피족욕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곳이라니.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장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가 노랑머리 직원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그는 태 선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블루마운틴 커피 한 잔과 허니버터브래드를 앞에 놓고 있는 나는 평온한 듯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머릿속은 마구 헝클어진 상태였다. 나의 마음은 사람을 신뢰하고 싶다는 소망과 이용당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어디쯤에 놓여 갈팡질팡했다. 선배를 믿지 않았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허니버터브래드 위에 끼얹어진 캐러멜소스를 보면서 어떠한 음식 맛도 모두 가려버리는 소스처럼 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고상한 척을 하며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입구 쪽에서 계속 흘러들었다. 돌아보자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들어와서 커피족욕 체험관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거나 이층 커피소품샵으로 올라갔다. 넓다고 느꼈던 공간이 어느새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외진 곳이라서 손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소란이 누그러들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햇빛을 받고 서있는 관광버스 주변에 중년 여성들이 네댓 명씩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커피 마시는 사이에 홀 서빙 담당이 바뀌었는지 까만 앞치마에 포니테일로 헤어스타일을 한 직원이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물었다.

“치워드릴까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고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네, 그런데 혹시 바랑도에 이곳 말고 커피 박물관이 또 있나요?”

직원은 가져온 쟁반에 빈 접시를 옮겨 담으면서 액정이 깨진 내 휴대폰에 시선을 보냈다. 그러곤 작은 목소리로 잘 모르겠는데요, 하면서 쟁반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방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휴대폰은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택시를 타고 서비스센터에 가서 휴대폰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방금 왔다 간 직원이 본인의 휴대폰을 보면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서 이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커피박물관이라는 카페가 하나 있네요. 그 순간 나는 활짝 미소를 보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가슴속 깊이 기쁨을 느꼈다. 태 선배에 대해 판단할 시간을 번 것 같았다. 잘못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 왜 나에게 잠깐이라도 행복감을 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그랬다.

마침 주차장에 택시가 정차해 있었다. 이곳 커피박물관 말고 같은 이름의 카페에 데려다 달라고 말하자 기사는 네비게이션 검색 창에 ㅋㅍㅂㅁㄱ이라고 자음을 입력했다. 검색 결과는 삼사 초 후에 떴다. 결과가 나오자 기사는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두 번째 장소를 터치하곤 운전을 시작했다. 상당히 과묵한 기사였다.

택시가 출발하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방울씩 떨어지나 싶더니 순식간에 후두둑 소리를 냈다. 나는 택시 창문 밖으로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방 안에서 우산을 꺼내 내릴 채비를 했다. 택시는 한달음에 숲이 우거진 곳으로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사방은 빗줄기로 감싸여 있었고 차츰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도로변 사이에 난 오솔길을 조금 걷자 멀리 비닐하우스 몇 동이 보였고 그 옆으로 돌과 나무로 지붕을 이은 작은 카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오솔길 한쪽에 놓인 입간판을 무심히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비에 젖고 있는 COFFEE 박물관이라는 글자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정도의 작은 간판이었다. 조악한 솜씨였지만 꽤나 정성을 들여서 조각칼로 글자를 다듬은 흔적이 느껴졌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드넓은 공간에서 나무판자를 다리 사이에 놓고 앉아 톱밥을 불어가며 간판을 완성했을 태 선배를 떠올렸다. 그러나 아직은 성급한 기대에 불과했다. 이곳이 선배의 카페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빽빽한 나무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몇 동의 비닐하우스가 낯설게 느껴졌다. 커피나무는 아열대 작물이라 우리나라에서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는 태 선배의 커피 박물관을 제대로 찾아온 걸지도 몰랐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생각하면서 비 내리는 숲길을 한참 걷자 숨이 가빠왔다. 카페로 향하는 길가에는 금계국이나 개망초, 패랭이 같은 야생화가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굵어진 빗줄기에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고였다.

엉성하게 놓여있는 디딤돌을 밟으며 도착한 카페는 토속적이고 소박했다. 민속촌에서 보았음직한 나무로 만든 출입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그러자 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진한 커피향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기대한 대로 실내는 아담하고 따뜻했다. 우산을 접고 외투에 묻은 빗방울을 손으로 털어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입구 한쪽에 로스팅된 원두가 유리병에 담긴 채로 벽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 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는 드립 기구가 놓여 있었다. 대략 테이블이 네다섯 개 놓여 있는 작은 카페였다. 나는 입구 쪽에서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직접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나무판자 길이도 고르지 않았고 못으로 어설프게 박은 자국을 보면 공장에서 찍어 만든 게 아님이 분명했다. 역시 태 선배의 솜씨가 틀림없었다.

여전히 태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선배를 찾지 않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더라도 내 마음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태 선배를 비난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책 없이 동창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니면서 인심을 잃은 그를 편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인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심을 얻지 못한 것인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가 삶을 택하는 방법은 늘 비주류의 그것이었으니까. 나는 동창들에게 돈을 빌리는 그의 행동에 악의가 없다면, 세상에 나 하나라도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내가 전혀 후회하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다.

미국인 여자는 원주민들과의 도보여행을 끝내며 이렇게 회고했다. 이제까지는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좋다 나쁘다로 평가만 하면서 살았다고, 이렇게 마치 밖을 내다보는 두 눈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과 같은 체험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자신의 삶이 이처럼 완벽하게 정직했던 적은 없었다고. 그것은 그들과 마음으로 대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내용물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자신 없었다. 게다가 나의 내면에 있는 게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은 소스 끼얹은 음식처럼 나의 마음을 은폐하고 있었다.

창밖의 빗줄기는 더 세차게 쏟아졌다. 나는 그 소리에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출입문이 열렸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우산을 접어 우산꽂이에 꽂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빗물의 하얀 포말 때문에 희붐해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반쯤은 놀란 표정으로 반쯤은 웃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태 선배였다. 나는 그를 보면서 오랜만에 활짝 순백의 웃음을 터뜨렸다. (끝)

차종혁 기자 justcha@finomy.com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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